반면교사된 웅진… "빨리 팔아야 살아남는다"
웅진, 미적거리다 법정관리… STX 신속한 구조조정과 대비
CJ·포스코 우량기업도 자산매각·유동성 확보 주력
한국일보 | 김이삭기자 | 입력 2012.10.02 21:05
"빨리 파는 기업이 살아 남는다."
웅진그룹 법정관리의 후폭풍이 기업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무리한 M&A가 가져온 '승자의 저주'이긴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쓰러진 가장 큰 기업이란 점에서 제2, 제3의 웅진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재계는 오너의 경영권집착이 웅진그룹 구조조정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보고, 팔아야 할 자산이라면 최대한 빨리 팔아 현금비축을 늘리는 쪽으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재계는 '웅진 스타일'과 'STX 스타일'을 비교 주목하고 있다. 웅진은 좌고우면하다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친 반면, STX는 훨씬 먼저 유동성 부족에 직면했으면서도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적어도 3차례 이상 경영판단에 중대 착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는 건설경기 호황의 끝물이었던 2007년에 빚까지 내가며 7,0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주고 극동건설을 사들인 것이고, 두 번째는 '본전'생각 때문에 이미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극동건설에 모기업(웅진홀딩스)를 통해 계속 돈을 쏟아 부은 것이며, 세 번째는 그룹 구조조정차원에서 내놓은 웅진코웨이 매각을 질질 끌었다는 것이다. 특히 웅진코웨이는 매각금액과 경영권문제로 매수자가 계속 바뀌었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그룹 부실화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STX도 과정은 비슷했다. 2000년대 초반 그룹설립 이후 계속된 M&A로 몸집을 불렸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지난해 26개 계열사 가운데 11곳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특히 주력인 조선업과 해운업이 동반 침체에 빠지면서, 그룹 전체가 사실상 '승자의 저주'직전상태까지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STX는 유럽의 알짜조선회사를 매물로 내놓은 데 이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저가 수주'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선박물량을 따냈다. 지난달 말에는 STX에너지 지분 49%를 일본 금융그룹 오릭스에 매각했고, STX메탈과 STX중공업의 합병도 확정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파다했던 'STX그룹 부도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자체적인 부실사업정리와 신규 자본유입을 통해 무엇보다 시장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신호를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도산위기에 몰리지 않은 비교적 건실한 기업들도 '적기 자산매각'에 주력하고 있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과 CJ GLS, CJ시스템즈 등이 보유한 1,500억원 규모의 부동산자산을 하나금융에 매각했다. CJ제일제당은 증시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주 22만주(696억원)까지 내다 팔았는데, 이는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1조원의 자금을 소진한 만큼 현금을 좀 더 확보해두자는 취지다. 회사 관계자는 "외환위기와 몇 차례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불필요한 자산은 최대한 빨리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투자목적이 완료됐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계열사 10여곳에 대한 연내 정리 방침을 밝혔다. 계열사가 70개(손자회사 포함)를 넘어 업무 효율성을 저해하고 신용등급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동부그룹은 울산 유화공장 매각(동부하이텍), 유상증자 및 회사채 발행(동부제철, 동부CNI)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야 하며 웅진처럼 질질 끌었다가는 결국 회사도 구조조정도 모두 실패하게 된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구조조정의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